멍청해지고 싶지 않아요
갑자기 펼쳐진 자유는 양날의 검이다. 나같이 멍청하고 무지하고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는 발전하지 못하는 족속들에게는 [발전 불가능] 도장을 쾅 찍어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대학 강의라도 꾸역꾸역 듣는 사람은 얼레벌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교수님의 말씀 속에서 흘러 들은 말 한두 문장 정도를 가냘프게 기억해 내 평생을 그 한두 문장으로 거들먹거리고 산다. (나처럼) 그리고 진짜 공부하기 위해서 마음먹고 산 책들은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 가고... 진짜 똑쟁이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선 그들이 하는 대화에 움츠러들며 '얘네는 왜 이렇게 똑똑할까.. 평소에 뭘 읽고 예전엔 어떤 교육을 받아왔길래 이렇게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것일까... 나도 집에 가면 꼭! 그 때 산 책을 읽어 봐야지' 하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막상 집에 가면 또 게임이나 하고, 책도 읽다가 동태눈깔이 되어 버리며 책 내용조차도 흘려 읽어 한 권을 정독(그걸 정독이라고 과연 부를 수 있을까?) 하더라도 결국 머릿속에 남는 것은 한두 줄의 사이드 문장. 그럼 또 그 흘러 읽은 한두 문장 정도를 가냘프게 기억해 내 평생을 그 책의 한두 문장으로 또 거들먹거리며 사는 것이다(이 또한 내 얘기다)
아래, 2023년 12월 10일에 작성한 나의 일기를 인용한다.
졸업 전시란 무엇일까요.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을 여운에 젖게 하는지.
평소에 함께 작업하던 친구들, 함께 수업을 듣던 선후배동기들, 같이 얼레벌레 투정 부리며 과제를 준비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일상을 나누던 친구들이 짧게는 반 년에서 길게는 4년동안 쌓아 올린 자신만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을 보며 마음이 벅찼습니다.
사실 최근 들어 전시를 보기가 두려웠어요. 전시를 보면 항상 무력감에 젖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본 국현미 올해의 작가상을 예로 들어볼까요.
2,3학년때까지만 해도 전시를 참 많이 보러 다녔습니다.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게 된 작업들도 있었고, 깨달음을 얻게 된 작업들도 있었으며, 반성을 하게 만든 작업들도 많았어요. 감상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항상 무언가를 얻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년 휴학을 하고 나서는 모든 전시가 그저 버겁게만 느껴졌었어요. '뭔가 깨달아야 해, 느껴야만 해, 본받아야만 해'라는 강박에 빠져서 그 어떤 전시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고,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슥 둘러보기만 할 뿐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감상이란 무엇일까요? 쓰면서도 제 지리멸렬함에 조소만 나옵니다. 아무튼 확실한 건, 제가 그간 1년간은 전시를 보면서 무언가를 느끼지도, 생각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지도 못했었고 그저 급급히 '보았다'는 행위에만 집착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식적으로 '보아야만 하니까' 해서 찾아갔던 전시가 대부분이었고, 그 의무감이 주는 압박감에 잠식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올작 얘기로 돌아와서.
이번 올해의 작가상은 총 4분의 작가분들이 라인업에 참여하셨는데요. 저는 동선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해 그 중 3분의 작품만을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인물과 공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 분은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야기를(국현미에서 진행되는 전시 중에선 파격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한 분은 역사적인 맥락을 가진 물건들, 이야기들, 상징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지막 한 분의 작업은 제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셨는지 알지 못해요.
친구와 함께 전시를 보면서 최근 국현미 전시가 예전엔 이야기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요즘에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대화를 했습니다. 아니, 그 반대였던가요. 최근의 전시 흐름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전시를 볼 때 잡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겠지요.
같은 맥락에서, 그래서 전시를 보고 난 뒤의 감상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시에도 별다른 감상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되기도 해요. 그렇기에 나는 이제 전시를 보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관람자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조금 괴롭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졸업전시는 다르게 다가왔어요.
보면서 깊게 감명을 받은 작업도 있었고, 깨달음을 얻은 작업도 있었으며, 새로운 정보, 새로운 국제적 문제, 새로운 정치적 이슈를 알게 된 작업도 많았어요. 이게 정말 학생작에서 나올 수 있는 메시지의 형태인가? 싶은 작업도 많았구요. 한 친구의 작업을 보고서는 깊은 생각에 빠진 적도 있었고, 사랑하는 친구의 작업을 보고 눈에 눈물이 고인 적도 있습니다(주책이죠).
특히 XXX 교수님 반의 책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책, 책이란 무엇일까요. 한 사람당 반드시 만들었어야만 했다는 작업을 꿰뚫는 각기 다른 책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글을,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 지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습니다만 정말 오랜만에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년의 나는 어떤 작업을 하게 될까, 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약간의 중압감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기분 좋은 중압감이었습니다. 기대와 희망이 섞인 중압감이요.
결론은 오랜만에 너무 보는 게 즐거운 전시를 경험했던 것 같아요.
졸업, 여전히 무섭습니다.
내년까지도 이 두려움이 계속되면 저는 정말로 논문으로 졸업을 하게 될 지도 몰라요.
그런데 일단 지금은 약간이나마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만들고 싶어요. 나의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습니다.
그간 제 작업은 제 이야기는 담기지 않은 공통적인 이야기, 추상적인 이야기들만이 담겨 있었는데요.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의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업들도 관심 있게 보기 시작했어요. 각 사람마다, 그게 누구가 되었든지 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혹은 자신있게- 풀어 나가는 것이 가슴에 깊이 와닿습니다.
아직 제 작업적 문법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상태입니다. 방학 중에 공부를 많이 해야겠죠. 이래놓고 제대로 된 공부도 못하고 어영부영 방학을 쫓기듯이 보내지는 않았으면 해요.
아무튼 무언가 결실을 맺고 싶어졌다는 좋은 이야기.
내 친구들, 친한 언니오빠들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작업들을 본다는 거 생각보다 엄청 벅찬 일이더군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물결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시간에 쫓겨, 그리고 발목 통증에 쫓겨 전시의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고, 사실 좀 급하게 관람한 감도 없지않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보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졸업 전시를 진행한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내년엔 저도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그래서 내가 지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두렵고 걱정이 앞선다. 하다못해 녹온을 쓰면서도 내가 잘 쓰고 있는지 자기검열하고, 남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걱정한다.
그럼에도 쓴다. 용기를 내서 쓴다. 쓰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기타 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 기형도,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
가끔 엄마의 태교 일기를 꺼내 읽는다. 2000년대 초반의 엄마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001. 02. 21
(…)
혜빈아 너무 내 자식을 예쁘다고 자랑하면 남들이 흉보겠지만 그래도 엄마 눈엔 네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해 보이는구나. 엊그제 교회에서 어른들이 네게 어쩜 이렇게 순하고 예쁘냐며 감탄하고 또 꼭 서양화 그림 속 아기같다고도 하셨어. 엄만 아주 으쓱했지. 어릴때 예쁘면 커서 못나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혜빈인 더욱더 귀하게 생기고 개성있는 아기가 되렴.
우리 아가 부드럽지만 강하고 발랄하지만 신중한 사람이 되어줘.
무엇보다도 자신감있고 자기 표현을 잘 할수 있는 당당한 여자로 성장하면 좋겠구나.
엄만 요즘 살이 안 빠져 걱정.
어떤 일을 시작하여 경력을 쌓을까 걱정.
어떻게 혜빈이에게 좋은 자극들을 줄까 걱정.
태교일기의 해당 일기 우측 상단 페이지는 삼각형 모양으로 고이 접혀 있다. 열 살의 혜빈이가 엄마의 조언을 잊지 않겠다고 자주 일기를 꺼내보며 남긴 흔적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이젠 갈색으로 변해 버려, 자칫 잘못 건드리면 바스라져 버릴 것 같은 은행잎이 바싹 말라 있다. 대략 2001년부터 끼워져 있던 은행잎이니 이제는 24살쯤 된 어르신이다. 괜시리 박완서의 <나목>이 생각난다. 봄을 기다리며 이파리를 떨어트리는 나목이. 걱정 뒤에 찾아올 희망을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
어쩌면 내가 일기를 비롯해서 녹온에 이르기까지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 것은 엄마의 영향이 클지도 모르겠다. 현명한 엄마와 달리 나는 이다지도 무지해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외워야 할 내용들을 노트에 써내려간다. 기억력도 그다지 좋지 않아 남들은 두세 번만에 금방 외울 것을 나는 수십 번, 수백 번 읽고 깜지가 될 정도로 종이에 반복해서 적은 후에야 간신히 일부분을 기억한다.
이렇게나 부족한 나이지만 그럼에도 멍청해지고 싶지가 않다. 나의 이름을 따라서 - 지혜 혜, 빛날 빈 - 나의 이름을 지었을 우리 부모님의 기대와 희망을 따라서. 그러니까 기록한다. 무언가를 쓴다. 잊지 않고자 애쓴다. 흔적을 남긴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