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 깊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내 심연을 그들이 오롯이 전담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이미 한 번 내가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친구 여럿을 그 수렁에 빠트렸고, 영영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이후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그 때의 기억은 다시 열어보기 힘든 개인적인 암흑기의 역사가 되어 버렸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가까워지고 싶은 친구들에겐 부러 나의 불행을 우스갯소리로 만들어 전달한다. 불행의 깊이는 가볍고 무겁고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그들이 그것을 가벼운 에피소드 쯤으로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 깊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 이런 일을 겪었어, 그래서 너무 괴로워, 보다는 나 이런 일을 겪었는데, 이런 포인트에서 진짜 웃기지 않냐? 가 에피소드의 경중을 가볍게 결정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거짓말이 늘었다. 스스로의 고민과 걱정에 능청스러워졌다. 이제는 강박이 되어 버린 나의 대화 습관을 불편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나는 더욱 우스꽝스러운 광대가 되어 나의 삶에 있어서 우스갯소리가 될 만한 에피소드만을 엄선하여 전달한다. 나 사실 별로 깊은 사람 아니야, 가볍게 즐기기 좋지 않아? 라는 말을 은연 중에 전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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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친구 관계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정도와 상한선을 규정짓고 우정을 이어나간다. 넌 여기까지야, 반면 너는 저기까지. 그 사람과의 만난 기간이나 나눈 대화의 깊이, 함께 경험한 에피소드들의 역사에 따라 그 기준들은 다양히 변화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 기준이 꽤나 널널해지는 편이다. 그러나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자 할 때 그 기준은 확연히 엄격해진다. 중학생 때 일기를 살펴 보면,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세로줄로 구역을 나누어 각각 친구들의 이름을 적어 놓은 기록이 있다. 물론 그 리스트에 적힌 친구들 중에서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은 손에 꼽는다. 이제 와서 보면 정말 의미가 없었던 행위였지만 당시에는 내게 ‘진짜 친구’만이 남아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있었다. 지금 보면 참 우습고, 경박스럽다. 진짜 친구에 적힌 친구들 중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존재까지 있지만, 당시에 얼마나 인간관계에 강박을 느껴 왔는지 보이는 대표적인 일화라고 볼 수 있겠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친구의 기준은 꽤나 완화되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는 친구들까지도 자주 만나고, 시간을 갖고자 하는 편이다. 인간관계엔 다양한 양상이 있고, 이 모든 사람들을 깊은 대화까진 하지 않는 친구라는 이유로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고 단언하기엔 정말 소중한 인연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깊은 대화라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의뭉스러운 마음조차 든다. 사랑에 대한 고민, 우울에 대한 이야기, 취업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 결혼을 하고 싶은지 하고 싶지 않은지 따위의 대화들이 과연 깊은 대화라고 할 수 있는가? 일상 얘기를 섞고 그 안에서 공통점과 나와 감성이 닿는 지점이 있는 사람들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요즘 시대에 고작 공통된 부분 한두가지를 가진 인연들이라 하더라도 귀중하게 느껴진다.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가리던 과거의 나는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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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주변인들이 꽤나 비슷한 양상을 띈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소한 첫째, 퀴어프렌들리하거나 퀴어일 것, 둘째, 무엇 하나라도 깊이 빠져 있거나 고찰하는 대상이 있을 것. 딱히 이 기준으로 세상이나 사람을 재단하진 않지만 어쩌다 보니 그런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었다. 닮은 것들은 서로 끌린다고 하던가, 그런 양상의 대표적인 예가 친구 관계라고 생각된다.
인간 관계는 참 쉽게 맺어지면서 동시에 쉽게 풀린다. 어찌저찌 여러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간신히 맺은 인연 또한 허무하게 풀어질 때가 있다. 순수한 인연일수록 오래 간다.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는 관계일수록 서로를 오해하지 않는다. 나는 오래 전에 친구를 향한 기대를 버렸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가치관이 있음을 인정했다. 이것을 깨닫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가, 떠났다.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잃은 인연들이 뼈아프게 그리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들과 흩어진 이유 하나하나에 연연해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대신 남은 인연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들을 사랑하고자 애쓴다. 그들이 주는 영향을 온 몸을 던져 받고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자 한다.
내 전부를 네게 줄게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데
그치만 나는 너와 영원을 꿈꾼다
신화에서 누군가는 여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거미가 되었다는데
나는 거미의 삶을 동경해서
우리 그럼 거미가 되자 거미가 되어 서로를 향해
볼품 없어도 돼?
정답은 없다고 우리끼리 가정하고
정답이 없어도 돼?
가끔 나의 북받치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친구들에게 너를 참 많이 좋아하노라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에 물량 공세는 없다지만 나는 언어로 물량 공세하고 뜬금없이 전달하는 선물로 애정을 고백한다. 사랑하는 친구의 생일은 내 통장이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챙기려고 애쓴다. 그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돌아보자면 내 사랑이 참 경박하고 서투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이 잘 전달되기는 했을까, 혹 오독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나의 모습을 확인한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지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좋은 사랑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입장에서, 좋은 사랑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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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황인숙, <강>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결국 우리는 모두 매한가지로 외롭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다. 서로를 사랑하기에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의 짐을 넘기고 싶지 않고, 그렇기에 습관적으로 본심을 숨긴다. 거짓말을 한다. 언젠가 들킬 거짓말을. 그러니까 강에서 우리 만나자. 거기서만큼은 우리 진실을 말하자. 각자의 속에 숨겨놓은 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