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모든 것은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
1.
영화 <이터널 선샤인> 속 '클레멘타인'은 심경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머리를 염색한다. 딱히 의도적으로 그를 따라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심경의 변화가 생길 때마다 머리에 장난질을 하는 편이다. 머리를 벅벅 밀기도 하고, 갑자기 탈색을 하기도 하고, 시도해보지 않은 다른 스타일의 커트를 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한 번 외적인 부분을 바꾸면 꼭 잠시 동안이라도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처음 <이터널 선샤인>을 봤을 때 클레멘타인과 나를 동일시했다. (자의식 과잉에서 일어난 판단이었고 아직도 부끄럽게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클레멘타인이 내 이상향일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건 지 좆대로 사는 여자.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미친년처럼 굴어도 걔 원래 미친년이잖아, 하고 넘길 수 있는 사람.
충동적인 행동을 했다. 실패한 관계가 되어 버렸던 사람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마치 난데없이 다시 조엘의 눈앞에 나타난 클레멘타인처럼. 물론 연락은 제대로 닿지 못했다. 나는 나와 건강한 관계를 맺기에 실패한 사람에게 왜인지 모를 부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고 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해 사과를 한다. 사과의 이유도 목적도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 수백만번의 사과 중에서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용서를 받은 것은 몇 번 뿐. 그저 번지르르하게 사과하는 법만 는 것 같다.
하마터면 올해 나의 졸업 전시의 테마가 될 뻔했던 <사랑>은 세상 모든 행위의 이유이자 목적이자 변명이 된다. 왜 그러셨어요? 사랑해서요. 이 한 마디면 그 행위의 결괏값이 한순간에 로맨틱해지기도, 또는 혐오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정말 이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어.
사랑하기 때문에 완벽하고 싶었고, 사랑하기 때문에 실수가 없길 바랐다. 그런데 내 몸은 마음과는 달라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크면 클수록 나를 자꾸 실수투성이 어린 아이로 만들어 버린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마찬가지일까. 사랑할수록 못난 모습만 보이게 되는 걸까.
사랑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중 [우리는 왜 사랑을 한다고 생각해?] 라는 공통 질문이 있었는데, 이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거라고 생각해. '내가 왜 사랑하지'라는 생각은, '내가 얘를 왜 사랑하지'까지는 할 수 있는데, 사랑이라는 걸 왜 하지? 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나는 그래. 난 저절로 되거든. 만약 사랑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한테 너가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설명을 해야 된다면, 사랑은 너의 삶을 더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말을 할 것 같긴 해.
"살아갈 이유"랑 "사랑"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사람은 어차피 살다가 죽는 건 당연한 거야. 그건 시간이 해 줄 문제고 난 태어났으니까 죽기 전까지 살아야 되는 거 아니야? 언제 죽는지 모르지만. 근데 그렇게 저절로 사는 것보다도 내가 이 사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게 건강한 거잖아. 어차피 사는 인생 재밌고 행복하게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게 사랑인 거지.
클레멘타인은 조엘에 의해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조엘 또한 클레멘타인에 의해 사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완전한 조엘도, 클레멘타인도 되지 못한 상태로 애매하게 중간을 겉돌며 사랑을 한다. 그래서 내 사랑이 그렇게나 구멍이 숭숭 뚫려 추잡스러워 보이나 보다. 그래서 나의 삶의 이유가 그토록 상처투성이였나보다.
2.
내가 사랑하는 건
끊을 때 확실히 끊을 수 있는 꿈 없는 단잠과 보슬한 이불의 감촉
나를 조심스럽게 알아보고자 하는 이야기들
맛있는 음식과 함께 먹는 사람들과의 수다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사람과 그 사람이 뱉는 모든 단어, 문장
잘 정리된 언어로 작성된 한 권의 책
글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의 손편지
나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의 행동거지들
넓은 침대에서 애인과 굳이굳이 좁게 자는 것
고양이와의 뽀뽀
3.
나는 실패한 관계들마저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동시에 그 관계 속에 상정된 사람들마저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관계를 놓지 못한다. 1년이 지나서라도, 아니, 2,3년이 지나서라도 다시 그를 붙잡고 싶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싶다. 우선 먼저 내 잘못이에요, 라고 말하고 그들에게 내가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끝나버린 것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전부 이야기하고 싶다.
이상하게도 관계를 마무리할 때 당시에는 투박하고 거칠게 마무리하더라도, 나중에서라도 그 마무리를 정돈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까 거지같은 일로 절교하고 연을 끊었어도 몇 달 뒤에 그 땐 그랬지, 그치만 지금은 서로를 용서하며 각자의 길을 가자. 고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나간 인연들 중 나에게 큰 악영향을 준 사람들에게 저주와 가까운 마음을 품었었는데, 내가 진심으로 애정하던 친구가 되려 그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이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제는 그들의 삶이 정말로 행복하길 빈다.
그리고 한때나마 나의 인생의 일부를 함께 보내주었음에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가능하면 나와 마지막 연락 한 번은 닿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대의 마지막 모습을 눈과 귀에 담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