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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대에 옷을 널어두면 눅눅한 냄새가 나는 계절이 왔다. 반강제로 건조기를 돌려야 하는 시기. 건조 기능이 있는 우리 집 세탁기는 건조를 돌리면 옷이 잔뜩 구겨져서 나온다. 일일이 다리미로 펴 주지 않으면 도저히 입을 수가 없다. 매일 아침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이 세탁기 문을 조심스레 열고 이번엔 제발 옷이 멀쩡한 상태로 나오기를 기도한다. 물론 그 기도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가끔 내가 실수로 내 마음까지 우리 집 세탁기에 돌려 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눅눅하고 잔뜩 구겨졌을 리가 없다. 아무래도 우리 집 세탁기는 성능이 엉망이니까. 멀쩡한 옷도 넝마로 만들어 버리는 힘을 가졌으니까. 그래서 원래는 건강해 마땅한 내 마음이 이렇게 꼬깃꼬깃 습기를 머금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누군가 내 마음도 다려줘야 되는 거 아닌가.
잔뜩 구겨진 운동복을 다리미로 다리며 생각했다. 내 마음 피는 것도 이만큼 쉬웠음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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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맺기
나에게는 관계에 대한 절망과 갈망이 동시에 존재한다. 항상 관계에 목말라하면서 동시에 관계를 맺은 이후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절망한다. 얕은 인연들은 수도 없이 많이 가지고 있지만 진정으로 깊은 관계를 갖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다. 그 몇몇조차도 혹 그들에게, 혹은 나에게 부담이 될까 내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히려, 내밀한 이야기를 한 번 쏟아내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때까지 말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가 내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로 치면 언제나 사이드브레이크에 손을 얹어놓은 채로 운행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니 나는 단 한번도 사람끼리의 관계 맺기가 수월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관계는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자라난 한 개인과 다른 개인이 만나서 개인의 가치관을 엮는 일이기에 온전히 이루어지기 어렵다. 특히나 내적 가치관이 미처 성장하지 못한 개인일수록 그 시작에 있어서 어려움의 허들은 더더욱 높아진다. 내가 나를 미처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남에 대해서 억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니 내면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너는 그런 가치관을 지녔구나, 그런데 나는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 이렇게 무의미한 일방향적인 소통이 반복되다 보니 상대는 금방 내게 지치고 만다. 내밀한 소통이 어렵다. 내가 무슨 관점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남과 소통할 때 항상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저 웃음과 유희를 위주로 하는 가볍고 얄팍한 대화를 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깊은 관계맺기에 실패한다. 어느 정도까지 나를 오픈할 수 있고 어느 정도까지 나를 감춰야 하는 지 그 경계가 너무 모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는 마치 평생 고치지 못할 숙원 사업처럼 내 꼬리표가 되어 따라가디는 것이다. ‘관계에 서툶’.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지만,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가치관과 타인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문제를 겪지, 나처럼 자아 수립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겪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들이 부럽다.
20대 중반에 접어들고 나서부터 모든 관계에 있어서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온전한 한 자아로서 이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는 생각. 무용한 관계는 없어야만 한다는 생각. 그렇다고 지난날의 내가 책임감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관계에 임했다는 것이 아니다. 전에 비해서 모든 관계의 미래를 그려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지금 나에게 안부를 묻곤 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대체 어찌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매일매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나에게 질리면 어쩌지, 내가 말실수를 하면 어쩌지, 내가 별로라고 느껴진다면. 기대했던 이미지와 달라 실망한다면.
이미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데도 새로운 실패는 또 새로운 아픔으로 내게 와닿는다.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형성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고충을 겪기도 하며, 관계를 끝맺음하는 데 있어서 서툴기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모두 관계에 대한 절망으로 수립된다. 시작의 절망, 중도의 절망, 끝의 절망. 나는 그 절망을 통해서 한 차례 무너지고, 다시 일어남을 통해서 성숙한다. 이러한 과정을 여러 번 겪으며 하나의 성장한 인격체로서 자신을 마주보고, 상대를 대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장성한 하나의 자아로서 자리잡는 데에 있어 관계의 절망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우린 누구나 관계에 있어 처절한 실패를 맛본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 처한 나 자신을 마주함에 있어 실패한 상황에 잔류하며 괴로움에 처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고, 더 나아가 발전한 모습을 띄고자 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 순간, 매 관계마다 뼈아픈 실수를 반복하고 이를 통해 매번 새로운 교훈을 얻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넘어지고 아파하는 것이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인간의 숙명인가 보다. 그런 것이 나의 숙명이라면 또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다음 단계를 위해 발자국을 내딛어 본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상대에게 있어 더 좋게 느껴질 관계를 맺기 위해 더 노력한다. 또 어느 단계에선 실패를 맛볼 테고, 어느 단계에선 괴로움을 느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은 어느 날 성숙해진 내가 과거의 인연들을 뒤돌아보며 나를 떠난 사람들에게 그래도 나의 일생을 한때나마 함께해준 것에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용서를 빌 수 있길, 그리고 그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축복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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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기
고양이와 마코토와 쭈
우리 집 침대는 오른쪽보다 왼쪽이 살짝 내려앉아 있다. 분해된 중고 침대를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우측 상단 모서리에 나사를 잘못 박은 탓이다. 잘못 박힌 나사 때문에 침대에서는 가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침대를 처음 들여오고 나서는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 소리에 꽤나 익숙해졌다.
침대를 바꾼 기념으로 알레르기 방지용 이불을 새로 샀다. 초록색에 미끈한 재질의 솜이불이었다. 고양이는 그 이불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매일 이불을 찢어발겨 솜이 안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그래도 내 돈으로 산 이불이라고 그 솜 터진 이불을 꾸역꾸역 덮었다. 가끔 재채기가 나왔지만 버틸 만했다.
고양이가 가끔 침대에 오줌을 싸는 일이 있다. 고양이는 나에게 불만이 있을 때 그런 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도저히 무엇에 대한 불만인지 알 수가 없을 땐 나에게 대체 왜 그러니, 하고 물어볼 때도 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나의 영역을 망치는 것이 내게 치명적인 공격인 것을, 고양이는 알고 있는 것이다. 이불과 커버와 시트를 전부 걷어내고, 인형을 소중하게 책상들에 놓아 주고, 그리고 나서 빨래를 돌린다. 향긋한 향이 나는 커버를 매트리스에 씌우고 이불을 놓아 따끈한 자리가 완성되면, 고양이는 그제야 화가 풀려 내게 머리를 부비작거린다. 그럼 나는 또 마음이 누그러져 고양이를 안고 사랑을 말한다. 우리의 작은 다툼들은 그런 식으로 싱겁게 끝난다. 침대로 시작해서 침대에서 끝난다.
고양이는 사람의 발걸음을 구별할 줄 안다. 내가 1층에서부터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어찌 알았는지 내 발걸음 소리를 듣고 집 안에서 애옹, 애옹 하고 운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냐는 식이다. 그럼 나는 성큼성큼 집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나를 벌렁 드러누워 맞이하는 고양이를 열심히 쓰다듬는다. 고양이는 만족할 때까지 쓰다듬당한 뒤에야 자리를 뜬다. 그리고 내게 머리를 부빈다. 신기하게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면 고양이는 음습한 곳을 찾아 숨어서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특히 배달원이나 택배 기사, 수리 기사들의 발소리가 들리면 그들이 볼 일을 마치고 그 공간을 떠나 소리가 영영 사라져 나지 않을 때까지 숨어 있다가 어떻게 알고 빼꼼,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애옹, 하고 운다. 대체 어떤 인간들을 감히 우리의 공간에 들인 거냐, 쯤으로 해석하고 있다. 친구들을 자주 집에 데려오다 보니, 고양이는 내 소중한 친구 둘의 발걸음도 구분하게 되었다. 마코토와 쭈. 이 둘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고양이는 마중을 나간다. 그리고 배를 뒤집어 깐다. 자기를 쓰다듬고 예뻐하란 식이다. 가끔 이렇게 뻔뻔하게 구는 고양이를 보면 헛웃음이 나왔다가도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알긴 아는가보다 싶어 기특하기도 하다. 이 아이가 영영 사랑만 알았으면 좋겠다.
마코토와 쭈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온다. 가끔 잠을 자고 가기도 한다. 그럼 보통 쭈는 소파에, 마코토는 침대에 눕는다. 쭈가 불편할까 봐 침대에 눕는 것을 권하면, 쭈는 다른 사람의 침대에는 눕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항상 소파를 택한다. 쭈를 위해 베개를 하나 더 꺼내 소파에 놓았다. 언제 자고 갈지 모르는 쭈가 언제든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마코토와 쭈가 우리 집에 방문하는 날이 늘어갈 때쯤 침대 커버와 이불 세트를 새로 샀다. 하늘색 다이아 체크무늬가 새겨진 이불이었다. 여름과 겨울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전에 쓰던 이불과 침대 커버는 갖다 버렸다. 과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한 기억을 가진 물건들을 마코토가 잠드는 공간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이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 새 이불로 바꾸고 나서는 한동안 잠에 제대로 들지 못하게 될까 봐 우려했다. 마코토는 그런 내 곁에서 나란히 누워 나를 재워 주었다. 가끔 자장가를 불러 주었고, 자주 토닥여 주었고, 매번 사랑을 말했다. 마코토에게 폭 안기면 나는 마코토의 품 안에 쏙 들어갔다. 나는 잠투정이 심하고, 잠버릇도 고약한 편이라 친구들과 함께 잠에 들면 꼭 한소리를 듣곤 했는데, 마코토는 나의 잠버릇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싫은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냥, 언니 밤새 좀 앓더라, 그래서 내가 계속 언니 쓰다듬어 줬어. 하고 가볍게 나를 껴안으며 그런 얘기를 했다. 그런 날은 잠을 참 잘 잤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잘 수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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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온의 한마디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왜인지 모르게 이번 글은 쓰면서 눈물이 나서 눈물을 훔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요즘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밤이 되면 이유 모를 감정이 휘몰아치면서 눈물이 또르륵 떨어집니다.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모쪼록 여름감기 조심하시며 보내시길 바랍니다. 냉방병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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