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다섯 살 때였던가, 아니면 넷, 여섯? 아무튼 말문이 다 트여 어른들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글을 원만히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즈음이었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분별력이 생기고 그것에 대해 느꼈던 감정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기억할 수 있는 (원치 않는) 힘이 생긴 시기에, 할아버지는 부모와 이모네 가족들에게 선물을 안겼다. 선물은 붉은색 끈으로 매듭지어진 리본이 거친 서체로 '사랑의 매'라고 새겨진 단어 위에 위풍당당하게, 그러나 퍽 어색하게 엮여 있던, 어린애들에게 휘두르기에는 꽤나 두께가 있었고, 그렇다고 어른들끼리 서로 휘두를 것 같지는 않았던, 손잡이가 손가락 모양으로 푹푹 파여 있는 대나무 회초리였다.
사촌언니와 나는 그것을 보고 어린애들 방으로 도망쳤다가 어른들에게 다시 끌려나왔는데, 강제로 바닥에 공손히 앉혀져 그 회초리가 부모님에게 마치 기사 임명식마냥 건네지고, 부모님이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 가방에 넣던 순간을 모두 지켜봐야 했다. 나는, 그 시기에 그토록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초리를 부모들에게 하사하듯 건네던 할아버지의 억센 손과,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찌그러지며 ‘장난스레’ 웃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났다.
원래 애들은 말 안 들으면 맞아야 하는 거야. 이건 너희를 위한 사랑의 매다.
그건 일종의 선언이었다. 내 앞날에 대한 예고이기도 했고. 실제로 그 회초리는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알뜰살뜰하게 쓰였다. '사랑의 매'는 굉장히 암묵적인 형태로, 그러나 공공연한 메시지를 담은 상태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때로 그것은 협박의 수단이 되기도 했고, 회유의 수단이 되기도 했으며, 징벌의 수단이 되기도 했고, 본보기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사랑의 매의 주 체벌 대상은 사촌언니였다. 나는 나의 사촌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린 나에게 모범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가 보는 앞에서 체벌이나 징계를 받는 모습을 여러 번 방관해야만 했는데, 그 이유는 우선 첫째로 어린 나에겐 어른들에게 감히 대항할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였고, 둘째로 나는 그 상황에 이미 충분히 압도되어서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거나 울지 않기 위해 애쓰느라 사촌의 상황을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론-어른이 된 나의 입장에선 조금 비참했는데- 후에는 그 체벌이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그 체벌을 받는 사촌이 조금 한심하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왜 이걸 못해서 혼난담. 나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어릴 적의 내가 그런 폭력적인 행위에 방관이라는 형태로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굉장히 괴로웠다. 그리고 단순 방관을 넘어서서 되려 ‘혼날 만 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자 더더욱, 더더욱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사촌에게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학습된 체벌의 루틴은 결국 체벌 받는 사람을 무능력자로 낙인 찍히게 만든다. 그걸 어린 시절부터 나와 사촌은 강제로 세뇌당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묘하게 형성되었던 나와 사촌 간 종목별 성취 격차에 대한 비교와 은근한 경쟁 의식의 부추김들이, 어른이 된 지금 내가 떠올려 보니 매우 폭력적이었다고, 그리고 우리는 어렸기 때문에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휩쓸리듯 흔들린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