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센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부모님 없이 천애고아인 자신을 거둬 준 양치기 가족으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양을 ‘치는’ 법을 배웠으며, 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법, 양들의 목소리를 듣는 법, 양들이 원하는 것을 빠르게 캐치하는 법 등을 배워왔다. 얀센은 훗날 자신이 양인지 양이 자신인지 헷갈릴 지경인 호접지몽의 상태가 되어 자신을 양이라고 칭하기까지에 이른다.
얀센, 너는 사람이란다.
아니에요, 저는 양이에요. 양으로서 양을 돌보고 관리해요. 저는 양들의 우두머리에요.
이 녀석 병세가 아주 짙구만.
얀센은 ‘양’이라는 정체성 하에서 농장에서 양들과 뛰논다. 그들과 진심으로 교감하며 그들만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한껏 세상에 내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늑대가 찾아왔다.
늑대(의 탈을 쓴 인간)는 자비 없이 얀센의 친구들을 공격했다. 그들은 양들의 털을 깎았고, 몇몇의 젖을 짰으며, 몇몇은 도축하여 고기로 만들었고, 나머지는 조금 더 살찌우고 나서 활용하겠다며 농장에 던지듯이 버리고 갔다. 상처투성이가 된 얀센은 늑대라는 것에 대해서 고찰하기 시작한다. 왜 늑대는 우리와 소통하려 들지 않지? 왜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려고 할까?
왜, 양은 늑대에 당할 수밖에 없을까?
필연적으로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관계를 맺는 과정에 있어서 필수불가결적으로 상하관계가 나뉜다. 약육강식의 세계. 수직적 문화가 짙은 세상. 수평적 관계라는 빛 좋은 개살구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계급장 문화.
얀센은 이러한 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얀센은 그저 양들의 무리에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양들은 언젠가 세상으로 내던져진다. 새빨간 고기의 형태가 되어, 혹은 양젖의 형태가 되어, 양털의 형태가 되어, …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얀센은 세상에 던져져야만 했다.
얀센은 세상에 던져졌다.
정확히는 던져짐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