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언니는 방황의 중,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꿈을 찾더니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문득 지난 녹온 10화를 작성하다가 언니가 생각이 나서, ‘언니는 어떻게 연고도 없는 제 3자들이 무사히 퇴원할 수 있게 진심으로 보살피고 케어할 수 있어?’ 하고 물어보니 아래와 같은 답장이 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돈 벌려고 하는 일이지. 직업이니까.
그런데 그걸 그냥 열심히 하는 거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같은 질문을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 한 간호사분께 한 적이 있었다. 공황 발작이 와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울고 있는 나를 달래주던 그 분이 내게 어떤 답변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내 기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던 답변이었고, 나는 그 답변에 충분히 감응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 분이 지금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그런데 L언니의 솔직한 대답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래. 당신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구나. 그런데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를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H언니는 소셜 미디어에 능숙하다. 초반에는 툴이 익숙치 않아 이것저것 열심히 인터넷에 검색해 가며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꽤나 멋진 결과물들을 매주, 정기적으로 세상에 내놓고 있다. 언니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들을 보면 이 사람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싶음과 동시에 언니의 그 실행력과 실행력 뒤에 감춰진 노력들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아 부러움과 동시에 괜한 뿌듯함이 든다. 내가 아는 언니가 이만큼이나 대단해, 싶다.
H언니와 연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H언니는 내가 건강한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우린 앞으로 H언니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과 가능성에 대해서 오래도록 떠들었다. 나는 원래 남의 이야기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편인데도 H언니의 이야기들은 왜인지 모르게 언젠가 꼭 실현될 것만 같고, 또 반드시 내게 ‘나 이번엔 이런 걸 했어’ 하면서 무언가를 들고 올 것만 같아서 기대하게 된다.
H언니와 L언니는 본인들이 모르는 사이에 내게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다. L언니로부터는 세상을 좀 더 시니컬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H언니로부터는 세상을 보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적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그 둘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 이전까지는 나는 세상 살아가기 막막해하는 어린 꼬마였을 뿐이었는데, 언니들과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동생들을 챙기면서 나는 어느새 언니가 되어 있었다. 남들에게 언니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언니들이 이랬을까? 나는 종종 생각해본다. 나에게 여러 질문을 하고, 의견을 구하고, 말을 걸어오는 동생들을 바라보며 언니들을 떠올린다. 언니들도 나를 볼 때 이런 감정이 들었을까? 이런 곤란함을 겪었을까? 이런 냉철함을 가진 채로 대답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대답을 하면 너무 꼰대 같을까, 고민했을까?
동생들을 대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면 그 때 그 언니들을 생각한다. 내가 스무살일 때 스물한 살이었던 언니들을. 고작 한 살 차이로 인하여 언니라는 무거운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힘든 티 하나 내지 않고 멋스럽게 ‘언니다움’을 실천했던 언니들을. 그러면서 동시에 나를 아끼는 동생이라고 귀여워해주고, 아껴주던 언니들을.
나는 아직 언니들이 필요하다.
*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았을 때 언니도 묘연했다
우리는 같은 중학교 학생이었고 엄마 아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급식을 누구와 먹는지 배드민턴을 누구와 치는지 같은 반 아이들이 어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지 언니는 왜 나를 보러 오지 않는지
언니는 나보다 한 살 위고
이효리처럼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췄다
언니의 친구들은 나를 몰랐지만 나는 알았지 : 마리 제니 소이 그런 이름을 가진 언니들
나도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발음의 이름이고 싶었는데
언니는 딱 한 번 나와 급식을 먹어주었다 내가 배식 당번이 되었을 때 언니의 식판에는 요구르트 두 개가 놓였다 언니와 같은 고등학교에 지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하면
어디까지 해줄 수 있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나를 길러낸 다음에도
울퉁불퉁 사춘기가 잘 접히지 않아서
바나나우유랑 초콜릿 사 먹었다 모모코*가
“달콤한 것들로만 배를 채우고 싶어” 말할 때는 솔직히 좀 감동이었다
나는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고집했다 바구니는 잡동사니로 꽉 채웠다 왠지 마음이 든든해지니까
그리고 넘어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조심한다고 했는데
구슬을 너무 많이 꿴 팔찌가 툭 끊어지듯
나를 쏟으면 개중에 몇몇은 분실했다
나는 속이 상해
언니 때문에 진짜
속상해 죽겠다 언니만큼이나
여름도 오지 않는데 나는 자꾸 우거져 거대해져 가려운 부위가 점점 번져 비가 내리면 진흙과 돌부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자전거가 나동그라지고 언니를 미워하는 마음이 다치고
이제 작은 상처는 돌보지 않게 돼
바깥은 라일락이 폈다는 향기로운 소문으로 가득했다
이때까지 나는 잘도 말라죽지 않았구나 무심코 거울을 봤다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꽃을 좋아하는
언니가 서 있었다 비가 그치고 묽어진 얼굴로
흰
꽃잎
한 장 나부끼지 않지만 언니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로의 가지가 되어주었다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의 주인공.
----- 고선경, <오! 라일락>
*
세상에 ‘언니’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러니까 내가 기댈 수 있는 언니들이,
내가 감히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그럼에도 동시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서로의 가지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언니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런 마음이 너무 벅차고 커져서 가끔 흘러나올 때가 있는데 그럼 언니들이 도망갈까 무섭다
나는 아직 언니가 되려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