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과거의 젊음과
용기와
때 지난 눈물과
너의 안부 연락
사랑이 없는 것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왈츠를 배우던 날을 복기하며
그 때 그것은 사랑이었을지를
그 때 우리는
사랑이었는지를
의미부여는 하지 않기로 했지만
나는 아직도 아침 햇살의 따사로움에도
의미를 새기는 사람이라서
어린 시절의 나를 사랑해주던 당신에게도
성인이 된 나를 축하해주던 당신에게도
나의 서툶에도 입맞춰주던 당신에게도
끝까지 말 못한 것이 있었는데
뱉지 못한 말은 영영 입에 머금도록 하고
정수기 물을 따라 마신다
소화되지 못한 말은 그대로 잠겨버린다
그렇게 끝나버린다
지난 녹온 7화를 읽으신 후,
저에게 사랑을 주실 수 있는 방식을 찾아보겠다 하신,
제가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저의 친구에게.
실기실은 고요하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의 머리는 테이블 위에
검은 달처럼 걸려 있다
형광등 불빛은 마음을 피로하게 하고
맨 앞자리에는 시 쓰는 사람이
무성한 머리카락 때문에
스크런치가 헐겁다
지식백과에 '소은'을 검색해본다
내가 모르는 소은은
생몰년을 알 수 없고
권두에는 우주가 그려진 판타지 소설
신에 의해 두 개로 쪼개진 지구에서
몇 세기를 거듭하며 생명을 영위하는 좌구
다른 세계의 멸망을
막아내는 영웅*
염창동 274-8에 세워진
건물의 이름
어린아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는
어린이집
프랑스어로는 petite faveur
작은 입술을 오므리고
[ 작은 은혜 pəti favœːʀ]
읽는다
사전 속의 소은은
묘목을 촘촘히 심고
달력을 짝짝 찢고
새로 산 냄비를 닦고
좋아하는 언니에게 줄
드림캐처를 고르고
윈손으로 아기를 씻기고
오른손으로는 연필을 깎고
콩밭을 일구고
정성껏
그루밍을 한다
위스키 잔의 네모난 얼음을
달그락거리며
민달팽이처럼
둥근 눈을 숨기기도 ······
그러나
내가 아는 소은
선물 포장 전문가
락 밴드 애호가
한여름의 매력을 애써 찾아주는
봄에 태어난 겨울 아가씨
편지와 눈물과 굿즈를 모으는
서프라이즈 파티광
두부와 계란처럼
말캉하고 단단한 마음의 소유자
혹은 노란 머리 고양이 신사
앞구르기를 하는
졸업가운과 학사모 차림으로
옆집 주연이와 손잡고
교정을 뛰어다니는
홍익대학교의
옆자리는 어느새 다른 사람
맨 앞자리에는 디자인서적 몇 권이
팔을 걷어붙이고
시 이야기는 도무지
하고 싶지 않아
실기실은 정숙하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나고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술래잡기 게임이 끝나간다
빈자리에 앉아 있고
혼자서만 초록
알록달록하고
-2024.08.22
노곤한 하루하루,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 한 편의 글